언어학(linguistics)은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언어학이 재미있는 이유 중에 가장 중대하면서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언어학은 그 갈래도 다양하여 낱소리를 다루는 음운론과 음성학에서부터 텍스트 전체의 맥락을 다루는 텍스트언어학까지 각기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루는 대상에 따라 언어학의 갈래를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는 위키백과의 언어학 페이지입니다.

  • 음성학 음성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학문
  • 음운론 화자가 말할 때 심리적으로 구분하는 소리(음운)에 대한 학문
  • 형태론 단어의 내부 구조에 대한 학문
  • 통사론 문장의 내부 구조에 대한 학문
  • 의미론 단어의 의미와 단어의 조합에 따른 의미 변화에 대한 학문
  • 화용론 대화에서 화자의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대한 학문
  • 텍스트언어학 언어 소통의 궁극적 단위인 텍스트에 대하여 다각도로 연구하는 학문

이 중에서 제가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분야는 통사론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의 꿈 중에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컴퓨터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로지 '형식'이고, 형식 중심의 학문인 통사론에 기반을 두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번역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 통사론에게 늘 숙제처럼 존재하는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의미론 되겠습니다. 통사론은 오로지 문장의 구조에 관심을 두지만, 의미론은 그 구조가 만들어 내는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통사론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숙제와 싸우게 됩니다.

There is a cat in the kitchen.
고양이가 부엌에 있다.

통사론은 수많은 문장들의 구조를 분석한 끝에 주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주어는 명사구, 그것도 주로 문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명사구이며, 없으면 안 되는 필수적인 성분이고, 의문문을 만들 때 조동사와 위치가 바뀌고, 부가의문문을 만들 때 또다시 주어로 나타나는 성분을 말합니다. 의미가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에 따라 이 문장의 주어는 아무 뜻도 없어 보이는 There이 됩니다. 비정할 정도로 형식에만 집착하는 통사론이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의미론에서 말하는 주어란 술어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입니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문장이란 본디 형식을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니, 이러한 의미론적 접근이 더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물론 의미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문장의 주어는 '있다(존재하다)'라는 술어의 의미상 주체가 되는 a cat입니다. 답답한 통사론에 비해 의미론은 더욱 융통성 있고 인간미까지 있어 보입니다.

제가 마치 두 학문(또는 이론)을 대립적인 존재들로 맞세운 것은 단순히 재미를 위함이고, 사실 이 두 학문은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각자가 존재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어는 의미 전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전달할 합리적인 형식이 필요하지요. 진정한 번역기를 만들려면 형식에 기반을 두고 거기에 의미론을 덮어 씌우는 작업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다음의 문장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Ducks stop locusts from destroying valuable crops.
오리는 메뚜기가 비싼 작물을 파괴하지 못하게 막는다.

구글 번역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리 가치가 농작물을 파괴 메뚜기 중지합니다.

우리말인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했는데, 글자는 우리글이지만 말이 우리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꿈만 같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구글을 뛰어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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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5 언어학의 꽃, 통사론과 의미론: Syntax and Semantics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