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편견 투성이인 것에 대하여 불만은 없습니다. 인간은 눈으로 현상의 단면만을 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와 밀접하지 않은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지요. 벼리지기님의 릴레이 추천을 받은 지금, 저를 둘러싼 편견들에 대하여 제 나름으로는 파격적인 글을 쓰고자 합니다.
- 여자 고등학교 총각 교사
- 컴퓨터와 디자인,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영어 교사
제가 받는 편견의 시선들은 다양하지만, 그 중재밋거리가 될 만한 것들만 꼽아 보았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부족하지만, 제가 가장 자주 찾고, 저를 가장 자주 찾아주시는 벼리지기님의 부탁인지라, 정성으로 강행하려 합니다.
여자 고등학교 총각 교사
대학 동문을 제외하면 교직에 몸담는 친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교사', '선생',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교사라는 것보다 제가 직면하는 더 큰 편견은 제 일터의 성적인 특성 때문이지요. 총각 신분으로 여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지라,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조차 온갖 괴이한 추측을 내놓고는 합니다.
- 친구들:
너희 학교에 원더걸스, 소녀시대 같은 아이들 한 둘씩 있겠네? 좋겠다.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연예인 같은 외모의 학생이 있다고 할지라도, 처음에는 그 학생에게 시선이 좀 더 가겠지요.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특별한 관심에 두는 학생들은 삶에 힘들어 하거나, 심각한 고민을 앓고 있거나, 아픈 학생들입니다. 외모는 물론 학업 성적같은 것은 관심의 정도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루의 가장 큰 부분을 학생들과 보냅니다. 이제는 가족같은 느낌이지요. 누나나 여동생이 돋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가끔씩 쓰이는 자랑 거리는 될 수 있겠지만 외모때문에 누나나 여동생을 더 사랑할 이유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 친구들, 소개받는 여자들 외 다수:
여학생들이 총각이라고 좋아라 해주니까 (여자 보는) 눈이 높고 왕자병이 있을 것 같다.
이건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학교, 여학생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몹쓸 병입니다. 지나치게 높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인지 자기 자신이 아주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좌측의 제 프로필 사진과 제 야동(?)을 보신 분들은, 저의 보잘것 없는 외모를 대충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키 크고 쌍꺼풀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친구들은 그런 저를 눈이 높다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한 번씩 학생들이 "선생님하고 결혼할 거예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인 저도, 마땅히 그 상황에서 해줄 말이 없습니다. 그냥 "그래, 결혼하자. 얼른 커라."라고 말하지만, 좀 더 나은 대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혹시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시다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 친구들:
교실에서 학생들의 민망한(?) 모습을 볼 때가 많지 않냐?
이것도 처음에 몇 주 정도나 그랬지요.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계단을 오를 때 보란듯이 땅으로 시선을 두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서로 아무렇지도 않지요. 다음과 같은 대화는 아주 일상적인 것입니다.
글은 길어지는데, 무슨 내용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계속 이어 나갑니다.학생: (아픈 표정으로) 선생님 아침에 터졌어요.
나: 터졌다고?
학생: 폭풍(생리, 생리통) 시작됐다고요.
나: 그래, 선생님이 뭘 해주면 되니?
학생: 조퇴 시켜주세요.
- 동료 여선생님들:
우리 학교 와서 여자들에 대한 환상 다 깼죠?
정답입니다. 여학교 교실은 아주 깨끗할 거라고 생각하실테지만,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남학생들이 청소를 더 잘하죠. 방학 때는 남학교에서 수업하기도 하는데 여학교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여학생들은 자기 자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라고 해도 자기가 버린 것이 아니라고 줍기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고요.)
아무튼 여자들에 대한 환상 여기서 완전히 다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길게 하면 이 글의 목적에 금이 가게될 것 같아 쓰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고 싶습니다.
컴퓨터와 디자인,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교사
저는 단 1초도 공식적인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고, 정보의 바다와 F1키를 밑거름으로 독학을 했습니다. 제가 잘났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제 지식과 기술의 기반이 얄팍하다는 것이지요.
웹디자이너, 웹프로그래머로 2년 정도 일을 했었는데, 그 얄팍한 기술들이 교무실에서 저에 대한 편견을 낳았지요. 하나는 꽤나 긍정적인 것, "요즘 젊은 교사들은 참 다재다능하다." 물론 이것도 다른 젊은 교사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의 별칭은 교무실의 기능직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 편견, "영어 전공한 거 맞아요? 영어는 잘 못하는 거 아니야?" 물론 들어서 기분 좋을 말은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 그리고 변명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럴 때마다 "아이들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헤헤."
다음 번 편견 타파 릴레이 주자
이젠 제가 재미없어서 글을 더 잇지 못하겠습니다. 어릴 때 책을 더 많이 읽고, 글도 더 많이 써봐야 하는 거였는데, 이럴 때마다 한 번씩 아쉽습니다. 결국은 편견 타파와는 무관한, 편견 소개, 나아가서는 편견을 부추기는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다음 번 주자를 정해야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요. 코리아헤럴드 기자이신 초서님, 그리고 모두의 여신이신 스쿨드님이 다음 글을 이어 나가셨으면 합니다. 무례하고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부탁드립니다.